소규모 건설현장, 스마트 안전의 '사각지대'인가 '전초기지'인가

필자: 최승윤 은하이엔씨 대표378eee40282b1.jpg

10억원 미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용예산 부족 등 문제 산재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제도의 현실화 및 '구독형 모델' 도입 절실

<출처 : 한국건설신문(http://www.conslove.co.kr)>

 건설 산업에서 '안전'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이자 생명의 무게 그 자체다. 그러나 오늘날 10억원 미만의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들려오는 현장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안전을 확보하고 싶어도 가용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책정된 산업안전보건관리비(이하 산안비)를 집행하려 해도 경직된 행정 규정의 벽에 가로막힌다는 비명 섞인 토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과 연계된 스마트 건설 안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연일 강조하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지만, 정작 사고 발생 비중이 가장 높은 소규모 현장에서 스마트 안전은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이거나, 발주처 정산을 위해 억지로 구색을 맞추는 '불필요한 지출'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차가운 현실이다.

■ 통계가 가리키는 비극, '추락' 중심의 소규모 현장 잔혹사

통계는 소규모 현장의 비극적 현실을 가감 없이 증명한다.
최근 수년간의 고용노동부 발표를 종합해보면, 전체 건설업 사고 사망자의 약 60% 이상이 50억원 미만 소규모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10억원 미만의 초소형 현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사망 사고의 절반 이상이 '추락'이라는 전형적인 재해 형태에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스템 비계와 스마트 추락 감지 센서 등의 도입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소규모 현장의 스마트 장비 도입률은 대형 현장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현장에 도입할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행 제도가 현장의 절박한 보폭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책적 지체' 현상이다.

■ ‘20%의 한도’에 묶인 스마트 안전, 형식적 정산의 늪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현실을 외면한 '20%의 규제'를 전격 재고하는 것이다.
현행 산안비 고시에 따르면 스마트 안전장비 구입 및 임대비는 전체 산안비 총액의 20% 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10억원 미만 공사의 경우, 산안비 총액 자체가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 남짓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 적은 예산의 20%라는 한도로는 고성능 AI 카메라 한 대를 설치하거나 통합 관제 시스템을 한 달간 운영하기에도 벅찬 금액이다.

결국 현장 관리자들은 실질적인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정산 불인정을 피하기 위해 한도 내에서 증빙이 쉬운 단순 소모품이나 구형 안전 용품을 중복 구매하는 등 예산을 낭비하게 된다.
소규모 현장에 한해서라도 스마트 안전장비의 집행 한도를 과감히 철폐하거나, 위험성 평가 결과에 따라 유연하게 총액 전체를 스마트 기술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적 전용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 선착순 예산 지원의 한계, '보편적 안전 복지'로의 전환

둘째로, 지원 정책의 지속성과 보편성 문제를 짚어보아야 한다.
현재 안전보건공단에서 시행하는 시스템 비계 보조금이나 스마트 장비 지원 사업은 영세 사업주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중한 정책이다.

그러나 이 '단비'는 너무나 빨리 마른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불만이다. 매년 초 예산 공고가 나기 무섭게 신청이 폭주하여 불과 3~4개월 만에 연간 재원이 소진되고 만다.
이로 인해 하반기에 착공하거나 긴급하게 공사를 시작하는 현장은 지원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복불복 안전'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안전은 선착순 경품 추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산 소진 여부와 관계없이 소규모 현장이 상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재원 구조를 확립하거나, 직접 지원이 어렵다면 세제 혜택이나 보험료 감면 등 간접 지원 방식으로라도 안전 비용을 보전해주는 '보편적 안전 복지' 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 '구독형 모델' 도입, 영세 업체의 장비 관리 부담 해소

셋째, 소규모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스마트 안전 구독 서비스'의 제도적 안착과 확산이 절실하다.
영세한 건설 업체가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스마트 장비를 직접 구매하고 이를 관리할 전문 IT 인력을 두는 것은 경영상 불가능에 가깝다.

공사가 종료된 후 장비를 보관하고 유지보수하는 비용 또한 큰 부담이다. 이에 대한 명쾌한 해법으로 '구독형 안전 관리 모델'을 적극 제안한다.
정수기나 차량 렌털처럼, 공사 기간에만 필요한 스마트 시스템을 빌려 쓰고 전문 업체가 설치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전담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러한 구독 서비스 비용을 산안비로 100% 정산받을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하며, 공공 조달 시장을 통해 소규모 현장에 최적화된 '표준 구독 패키지' 보급을 주도해야 한다.

■ 성과 중심 정산의 혁신, 조달 행정의 체질 개선 촉구

마지막으로, 발주처와 조달 행정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현재의 산안비 정산 방식은 ‘무엇을 샀는가’라는 영수증 중심의 사후 정산에 함몰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가 정산 단계에서 거부당할까 봐 검증된 구태의연한 방식만을 고집하게 된다.

이제는 '어떤 위험 요인을 실질적으로 제거했는가'라는 성과 중심의 정산 방식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스마트 장비를 통해 사고 위험도를 낮춘 데이터가 증명된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소프트웨어 이용료나 플랫폼 사용료를 폭넓게 인정해주어야 한다. 조달 공사의 정산 기준이 유연해질 때 비로소 현장의 스마트 안전 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

■ 사각지대 없는 안전한 일터, 우리 모두의 과제

결국 정책의 성패는 현장의 수용성과 실효성에 달려 있다. 대형 건설사가 주도하는 화려한 스마트 건설 기술도 중요하지만, 정작 안전모 하나의 체결 여부를 걱정하고, 부실한 작업 발판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소규모 현장 근로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망사고 절반 감축'이라는 국가적 목표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과연 현재의 산안비 제도가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 있는 근로자를 보호하기에 충분한 그릇인지, 아니면 단지 행정적 면피를 위한 칸막이 규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소규모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과감한 제도 개선과 구독형 모델의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자 공동체의 의무다.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가 배제된 채 관성적으로 이어져 온 규제 위주의 정책을 넘어, 영세 현장의 근로자들도 스마트 기술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실질적인 안전 사다리'를 우리는 어떻게 구축해야 할 것인가?

단순히 장비를 사는 것을 넘어 '안전을 구독하는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발주처와 정부, 그리고 건설업계가 지금 당장 내려놓아야 할 기득권과 편의주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꿈꾸는 '사각지대 없는 안전한 일터'를 향한 첫 단추는 어디서부터 채워져야 하는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가기를 희망한다.

출처 : 한국건설신문(http://www.conslo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