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M, 이제 '붉은 깃발'을 내려놓을 때

기술 '고도화'에서 '활성화'로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보편성과 내재화가 BIM 기술 활성화의 핵심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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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연 포스코이앤씨 엑스퍼트>


■ BIM은 목적인가, 수단인가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 건설산업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20여년이 흘렀다. 정부는 BIM 의무화 로드맵을 확대하고 있으며, 발주기관은 BIM 납품을 요구하고, 기업들은 BIM 전담 조직을 구성하며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나가 보면 여전히 같은 질문과 마주한다.

BIM의 근본적 목적은 명확하다. 계획(설계)한 대로 시공(施工)하는 것이다(특히 시공사의 입장에서는). 설계 의도를 정확하게 구현하고, 공종 간 간섭을 사전에 제거하며, 공기와 원가를 최적화하는 것, 이 모든 가치는 결국 현장에서 집약된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BIM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 시작했다.

납품 수준을 충족하기 위한 BIM, 인증 획득을 위한 BIM,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BIM이 확산되면서, BIM은 현장과 유리된 기술 영역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다. 정작 현장에서 땀 흘리는 공정 담당자, 협력업체 소장, 품질 관리자들에게 BIM은 여전히 '남의 기술'로 남아 있다.

■ '붉은 깃발'의 법, 그리고 우리의 자화상

지난 1865년, 영국 의회는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을 통과시켰다. 자동차는 시속 6킬로미터를 초과할 수 없으며, 반드시 보행자가 붉은 깃발을 들고 차량 앞에서 걷도록 규정한 법이었다.
마차 산업 보호와 도로 안전이라는 명목 아래 제정된 이 법은 결과적으로 영국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과 프랑스에 내어주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기술의 가능성을 기존의 관성이 옭아맨 것이다.

오늘날 BIM 현장을 돌아보면, 우리 스스로가 붉은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설계부터 BIM으로 되어야 가능하다", "표준화와 코드체계가 갖추어야 한다", "직접적인 원가저감, 공기단축이 정량적인 성과로 도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등의 고집은 기술 확산을 가로막는 또 다른 붉은 깃발이다.
이러한 집착이 현장에서 BIM을 외면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붉은 깃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 기술고도화와 기술활성화 : 서로 다른 나침반

BIM 분야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인 화두는 '기술고도화'였다. 더 정밀한 모델, 더 고도화된 알고리즘, 더 완벽한 데이터, 이러한 방향은 분명 의미 있는 목표다.
그러나 기술고도화만으로는 현장 활용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기술고도화와 기술활성화는 접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술고도화가 기술의 완성도를 수직으로 심화하는 것이라면, 기술활성화는 기술이 사람과 프로세스 속에 수평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성공은 최첨단 반도체 기술만의 공이 아니었다. 누구나 별도의 교육 없이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일상의 모든 순간에 자연스럽게 통합된 생태계가 스마트폰을 범용 기술로 만든 진짜 이유였다.

BIM도 마찬가지다. 현장 소장이 태블릿 하나로 모델을 확인하고, 협력업체가 별도의 소프트웨어 없이 간섭 결과를 받아볼 수 있으며, 공정 담당자가 일상적인 업무 속에서 자연스럽게 BIM 정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특정 전문가나 BIM전담팀만의 도구'에서 '모두의 인프라'로 전환될 때, 비로소 기술활성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 기술활성화의 두 원칙 : 보편성과 내재화

기술활성화를 위한 접근은 두 가지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보편성(普遍性)이다. 단순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소수만이 사용하는 정교한 기술보다 더 큰 산업적 가치를 만들어낸다.
모든 현장에서 쉽게 쓸 수 있는 BIM 기반 간섭 검토 프로세스 하나가, 일부 현장에서만 운영되는 정교한 AI 분석 시스템보다 더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기술의 완성도보다 기술의 접근성이 산업 전환의 실제 동력임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내재화(內在化)다. 기술은 별도의 독립된 시스템으로 운영될 때보다,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BIM 정보가 공정 관리 시스템, 원가 관리 시스템, 품질 검사 프로세스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현장은 BIM을 '추가적인 부담'이 아닌 '일하는 방식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다. 도구가 아닌 문화로 스며드는 것, 그것이 내재화의 본질이다.

■ '완벽한' BIM보다 '작동하는' BIM

기술활성화의 전환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인식 전환이 있다. 지금은 완벽한 시스템을 추구하는 것보다, 부족하더라도 실질적인 성과와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라는 인식이다.

완벽주의는 종종 행동을 멈추게 한다. "모든 데이터가 갖춰지면 시작하겠다", "시스템이 구축되면 적용하겠다", "표준이 확정되면 도입하겠다" 등의 논리들이 몇 년 동안이나 BIM의 현장 활용을 유예시켜 왔다.
완성을 기다리는 동안, 현장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버렸다.

작은 성과는 신뢰를 만든다. 현장의 한 공종에서 BIM으로 부재 간섭을 사전에 잡아내 공기를 단축한 사례 하나가, 어떤 내부 보고서나 교육 자료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작동하는 사례가 쌓일 때 현장은 스스로 BIM을 찾기 시작한다. 기술의 확산은 강요가 아닌 경험에서 비롯된다.

지금 이 시기, BIM 추진의 기준을 '얼마나 정교한가'에서 '얼마나 실제로 쓰이고 있는가'로 바꿔야 한다.
소규모라도 반복 가능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조직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현 단계에서 BIM 리더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 '붉은 깃발'을 내려놓으며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BIM 기술은 현장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기술 그 자체를 위한 것인가.
유니크한 기술 개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지금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데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가장 정교한 기술이 홀로 주도하지 않는다. 부족하더라도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기술, 가장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반복 활용하는 기술이 결국 산업을 바꾼다.
완벽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 성과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이 시기 BIM이 선택해야 할 방향이다.

BIM이 진정으로 시공의 기술이 되려면, 우리 스스로 들고 서 있는 붉은 깃발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술의 가능성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그 가능성을 현장의 언어로, 그리고 오늘의 성과로 번역해내는 일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