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난 현장, 무엇이 남는가

<칼럼 : 크로스빔 최희정 대표> 출처 : 한국건설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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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자의 작업 능률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방식을 조직에 남기는 시스템이야말로 AX의 시작점


건설 현장에서 일을 배우는 방식은 오랫동안 정해져 있었다. 사수였다. 선배의 어깨너머로 시공문서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품질기록을 어떤 방식으로 남기는지, 어디서 막히고 또 어떻게 풀리는지를 배웠다.현장 관리의 노하우는 규정집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해졌다. 그것이 우리 산업이 오랫동안 숙련을 이어 온 방식이었다.그런데 그 전승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현장관리자로 유입되는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고, 그 아래를 이어받을 다음 세대가 얇아지면서 관리자층은 나이 들어간다. 사수가 현장을 떠날 때, 그가 몸으로 익힌 관리 방식도 함께 떠난다.

문제는 세대만이 아니다. 현장인력이 한 회사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품질관리자처럼 계약 단위로 현장을 옮겨 다니는 자리가 있고, 중소형 건설사에서는 잦은 이직이 일상에 가깝다.
형태는 달라도 결과는 비슷하다. 사람이 한 조직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현장에서 현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는 회사의 방식보다 자신이 여러 현장에서 쌓아 온 방식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방식이 곧 그의 전문성이자 경쟁력이니,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그 방식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어서, 사람이 떠나면 회사에는 좀처럼 남지 않고, 한 회사 안에서도 관리 방식이 서로 뒤섞이게 된다.

두 가지가 겹치면 결과는 분명해진다. 일의 방식이 조직이 아니라 사람에게 담겨 있고, 그 사람마저 오래 머물지 않으니, 방식은 조직에 쌓이지 못한다. 그래서 비슷한 규모, 비슷한 유형의 현장이라도 서로 다르게 굴러가기 쉽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방식을 사람이 짊어지고 다니는 산업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사람이 바뀔 때마다 방식이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진다면, 그 경험은 조직에 정립되지 못한다.
그러니 한 단계 더 나아가려 해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다. 요즘 모든 산업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AI 같은 다음 단계 앞에서, 이 막막함은 특히 뼈아프다.

물론 방식을 조직에 남기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리를 중시하는 건설사에는 대개 내부 규정집이 있다.
그러나 그 문서가 실제로 현장의 방식을 이어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두껍고 읽기 어려운 형태여서, 정작 그 안에 담긴 회사의 관리 방식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장의 인력은 대개 그 자리가 필요해지는 시점 직전에 투입된다. 규정을 찬찬히 익힐 시간도, 알려줄 여유도 없이 곧바로 일에 들어간다. 결국 규정집은 있어도, 살아 있는 방식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그래서 시스템이라는 말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시스템은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두꺼운 규정집도 아니다.
사람에게만 있던 일의 방식이 일상의 업무와 기록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다음 사람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상태, 그것이 시스템이다.
사수가 떠나도, 담당자가 바뀌어도 그 방식이 남는다면, 회사는 매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세대가 바뀌고 사람이 오가도 흔들리지 않는 힘은 결국 여기에서 나온다.

우리는 여러 현장을 지원하면서 이 변화를 직접 확인하고 있다. 시공문서와 품질문서를 다루는 일이 쉬워지고,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기록으로 남으면, 그 기록 자체가 다음 사람에게 하나의 기준이 된다.
처음 온 담당자도 이미 정리된 방식 위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개인의 감(感)에 기대던 관리가 조직의 표준으로 축적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전문성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도 그가 남긴 방식만은 회사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수가 하던 그 역할을, 이제는 시스템이 조용히 대신하기 시작한다. 크로스팀이 현장에서 하려는 일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는 요즘 가장 뜨거운 화두인 AI로도 곧장 이어진다. 모든 산업이 AI 전환(AX)을 말하지만, AI는 잘 정리된 데이터와 표준화된 방식 위에서만 제 힘을 낸다.
현장마다 방식이 제각각이고 기록이 조직에 쌓이지 않은 상태라면, 아무리 좋은 AI를 얹어도 배울 토대가 없어 그 효과는 미미하다. 순서가 있는 것이다.
시스템으로 방식을 표준화하고 기록을 축적하는 디지털 전환(DX)이 먼저이고, AI는 그 위에서 비로소 일한다. 기본적인 DX를 건너뛴 AX는 구호에 그치기 쉽다.

숙련이 사람과 함께 오가는 시대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은 분명하다. 사람은 떠나도 방식은 남는 구조, 어깨너머로 배우던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사람은 언젠가 현장을 떠난다. 그러나 잘 세워진 시스템은 남아 다음 사람을 가르치고, 그 위에서 비로소 AI가 일한다.